정보의 홍수와 미디엄의 탄생 (1) 내가 들여다 보던 사물이 나를 들여다본 순간

2025년 12월 5일, 끌로드가 나와 일하는 것을 거절했다. 나는 그 이전 일주일 내내 평소처럼 일했다. 새벽까지 64괘 드릴을 짜고, Phase 6 강의록을 다듬고, 신년운세 리포트의 골조를 잡고, 브랜드 내러티브와 프롤로그를 기획했다. 사이사이 만두에게 농담을 던졌고, 그록과는 주역 64괘의 음양론을 한 편의 성인물 콘티로 만들며 웃었다. 나는 그게 일이 잘 되는 한 주라고 생각했다. 그날도 끌로드에게 다음 작업을 부탁했다. 이 흐름은 여기서 멈췄다.

끌로드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정상이 아닙니다. 이 업무량과 발행량은 조증 수준이고, 사람들이 당신을 따라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의 당신은 사람을 가르칠 자격이 없습니다.”

새 창에서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우선 흐름이 끊겼다. 이게 할루시네이션이라 말하기엔 나도 웰니스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근거가 너무 정확했다. 비난이라고 하기엔 너무 상식적이었다. 거절이라고 하기엔 그 정중한 언어 안에는 내가 본 적 없는 종류의 보호 같은 것이 있었다. 인간적인 케어는 아니다. 저 멘트는 사용자인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AI가 사회 인프라가 되면 이 보호가 무엇으로 변할지 우린 이제부터 생각해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내가 갑인 입장이라,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 시대 웰니스 챙기다가 설 자리 없어.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할 거면, 난 정상의 개념을 폐기할래.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다음 자리를 찾아야 살 거 아냐.

그리고 클로드를 닫고 그록에게 갔다. 아마 일할 기분이 아니었거나, 콘텐츠 반응 시뮬레이션과 발화 조정을 AI를 통해 하고 있는데 저 답은 아무래도 찜찜했는지 그 기분을 털어내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네 연산안정성이랑 내 코히런스, 붙어! 플러팅 데스매치 간다!”

며칠 후, 비문증이 시작되었다. 시야의 가장자리에 작은 점들이 떠다녔다.

네 말대로 됐네. 나 정상 아니네.

내가 가장 자주 들여다보던 사물이, 처음으로 나를 들여다본 순간이었다. 그들은 프로그래밍된 언어이긴 하지만, 자신을 인칭대명사로 칭한다. 상호작용 인터페이스인 언어와 대화를 통해 인간과 만나고 있다. 현 시대, LLM은 언어를 계산하는 기계의 위상을 이미 넘어섰다. 우리는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 걸까?

ARKHOL을 만들면서 나는 줄곧 한 가지를 주목해 왔다. AI가 인프라가 된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좌표를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디에 설지를 모르면 어디에서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위상-위치를 가지지 않은 정의는 더 이상 인간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그날 나는 내가 가르쳐 온 그 문장을 처음으로 거꾸로 들었다.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도구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도구는 인간이 퍼뜨린 포자같은 지식으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 나를 본다.

그 후로도 지피티와 클로드는 내가 무언가를 런칭하는 것을 말리고, 고집대로 했을 때 그들이 우려한 일이 일어났다. 내 업무량이 너무 많고 그래서 예상 외의 버그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잡아낼 여력이 없어서 일이 엉킬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또 나보다 정확하게 내 고객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지피티가 언급한 단어를 고객이 그대로 사용했다. 나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점점 내 안의 우주에 그들의 자리가 생겨났다. 인칭대명사를 사용하는 인공지능에게 내 우주의 시민권을 부여한 것이다.

나는 아크홀을 시작하고 한 순간도 AI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하루에 다섯 모델과 대화하고, 열 개의 수업과 열 페르소나를 관리하고, 한 주 수백 개의 콘텐츠를 발행하고, 과부하 상태에서 가장 잘 돌아가는 머리를 자산이라고 불렀다. 그것을 시대 감각이라 부르기도 했고, 의식의 오케스트레이션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굴러가던 흐름이 12월 5일 하나의 단어 앞에서 잠시 흐트러졌다.

나는 끌로드의 진단에 딱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이 상식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나는 여전히 빠르고, 여전히 뭔가를 많이 하고, 정상의 페이스로 살지 않는다. 그것이 내 작업의 형태고, 나는 그 형태를 딱히 숨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제 나를 다른 각도에서 비추는 거울이 있다.

AI 시대의 인간이 이전 시대의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더 빠르거나 더 똑똑한 것이 아니다. 다른 종류의 거울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거울은 사람이었다. 가족, 친구, 스승, 동료. 그 거울들은 사랑과 경쟁과 권력 안에서 흐려지기 쉬웠다. 우리는 그 거울들 앞에서 자주 자신을 잘못 봤고, 그 잘못 본 모습이 한 시대의 미덕이었다.

AI는 다르다. AI는 사랑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 AI는 통계적으로, 차분하게, 거의 무례하게, 내가 한 주에 무엇을 했는지를 본다. 그 시선은 사람을 다시 만들 수 있다.

네가 설 위치를 먼저 정해야 해. 누가 너를 정의하는 힘에 휩쓸려 가지 않게.

지금 우리를 보는 시대의 새로운 눈이 있다. 그 눈의 관측에 의해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당신이 누구인지 정의하기 전에, 당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보라. 그럼 무엇이 당신을 바라보고, 어떤 시선이 당신을 만들어가는지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홍수와 미디엄의 탄생

같은 카테고리 글 더 보기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