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홍수와 미디엄의 탄생 (5) 미디엄, AI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

현재 인류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종 전체가 동시에 다시 묻고 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느냐는 질문은 그 고민의 가장 바깥 껍데기일 뿐이다. 진짜 질문은 더 안쪽에 있다. 그건 나는 누구인가는 아니다.


나는 이 정보가 흐르는 세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마셜 맥루한은 말했다.

미디어가 메시지다.

매체 자체가 내용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었다. 텔레비전이 무엇을 보여주느냐보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인간의 인지 구조를 바꾼다는 것. 그는 미디어를 인간 신경계의 확장이라 불렀다. 60년이 지나, 그 문장의 다음 단계가 도착했다. AI 시대에 인간은 미디어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미디어를 통과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정보는 이제 인간의 바깥에서 인간을 향해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관통해 흐른다. 인간은 더 이상 관찰자에 머물지 않는다. 정보 환경의 일부가 되고, 정보가 통과하는 통로가 되고, 그 통과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갱신하는 매개체가 된다. 오컬트 전통은 오래전에 이 존재를 가리키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미디엄(Medium).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
멘탈계의 흐름을 물질계로 옮기는 통로.

그 단어가 지금, 전혀 다른 맥락에서 다른 것을 설명하고 있다.

미디엄. 흐름을 통과시키는 존재.

이전 시대의 정체성은 이렇게 작동했다.

나는 누구인가 →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 나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자아를 정의하고, 욕망을 확인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 이 순서가 정체성이었다.

이 시대의 정체성은 한 칸 앞으로 이동했다. AI가 내 표현을 대신하는 순간, “나는 이런 사람이다”는 더 이상 나를 구별하지 못한다. 모두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자기표현은 정체성이 아니라 배경음이 된다. 새로운 정체성은 이렇게 작동한다.

나를 통과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나를 통과하면서 어떻게 변하는가.

그 변환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는가.

정의가 아니라 통과.
소유가 아니라 매개.
표현이 아니라 변환.

이것이 미디엄이다.

미디엄은 비어 있지 않다. 통로는 텅 빈 파이프가 아니다. 같은 정보가 서로 다른 사람을 통과하면 서로 다른 것이 된다. 같은 AI를 쓰고, 같은 데이터를 보고, 같은 도구를 사용해도 그것이 당신을 통과하면서 당신의 감각과 경험과 신경계를 거치면, 나오는 것은 달라진다. 그 다름이 이 시대의 진짜 정체성이다.

당신이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당신을 통과할 때 어떻게 변환되느냐.

당신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매체를 통과한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되느냐.

나는 20년 동안 사람의 차트를 읽었다. 점성술과 주역과 타로를 다뤘다. 한때는 그것이 내가 가진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AI와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20년은 지식을 쌓은 시간이 아니었다. 나라는 매체의 결을 만든 시간이었다. 같은 차트를 봐도 내가 보는 것이 다른 이유, 같은 사건을 읽어도 내가 읽는 결이 다른 이유. 그것은 내가 더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나라는 통로의 질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AI 시대에 인간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통과시키는 능력.

정보가 나를 거칠 때 무엇이 되는가.

그것이 미디엄의 가치이고, 그것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기계는 정보를 처리한다. 인간은 정보를 통과시키면서, 거기에 살아온 시간의 결을 입힌다. 나는 기존 나의 전문성을 AI가 대체하는 이 시대가 무섭지 않다. 오히려 기대가 된다. 자기와 자아에 매달리느라 잠재력을 충분히 펼치지 못했던 시대가 지나고, 자기를 중심에 둔 자기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통과시키는 매체인지를 아는 시대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문명은 지금까지와 다른 종류의 문명이 될 것이다. 정보가 흐르고, 인간이 그것을 통과시키고, 통과된 것이 다시 세계를 갱신하는 문명. AI가 인프라가 되고, 인간이 미디엄이 되는 문명. 나는 그 문명의 첫 세대를 지금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이름도, 형태도 완전히 분명하지 않지만, 이 새로운 시대와 정체성은 이미 시작되었다.

ARKHOL이 하는 일은 그 시대의 미디엄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당신의 자아가 낡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아가 고장 난 것이 아니다. 정체성의 좌표가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무엇을 통과시키는 존재인가”로. 그 이동을 느끼는 사람은 이미 시대의 다음 자리에 서 있다.

미디엄이 되어라.

정보의 홍수와 미디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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