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에 노트를 연다. 지난달에 “이번 달부터 진짜”라고 적어 둔 페이지가 그대로 있다. 그 아래로 반쯤 하다 만 것들이 줄줄이 밀려 있다. 손이 그걸 다 지우고 새 노트를 여는 쪽으로 간다. 앱을 지웠다 다시 깔고, 새 파일을 만들고, 맨 위에 다시 “이번엔 진짜”라고 쓰면 왠지 깨끗해질 것 같다. 정작 지난 것들을 정산할 생각은 그 손에서 밀려나 있다. 화면을 새로 켜자, 다 갈아엎고 싶어진다.
이번 주 메인 행성은 수성, 페이즈는 세 번째다. 그런데 그 수성이 게자리에서 뒤로 걷는다. 되감아 집으로 항해하는 자, 오딧세우스의 주간이다. 그림자 자리에는 세이렌이 서 있다. 이쪽으로 오라고, 지금 배를 버리고 새로 시작하라고 노래하는 원형이다.

Odysseus and Polyphemus (1896), by Arnold Bocklin
되감는 길이 집으로 가는 항로였다
오딧세우스는 트로이가 끝나고 십 년을 바다에서 헤맸다. 집으로 가는 길은 곧장 앞으로 뻗어 있지 않았다. 바람에 밀리고, 섬에 붙들리고, 지나온 물길을 몇 번이고 되짚었다. 키르케의 안개 낀 섬에서는 일 년을 머물며 집을 잊을 뻔했다. 그가 이타카에 닿은 방법은 하나였다. 새 바다를 찾아 나서는 대신, 지나온 좌표를 되짚어 다시 읽는 것.
여기서 이번 주의 반전이 나온다. 다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려는 손과, 안개 속에 멈춰 느끼기만 하는 손은 같은 손이다. 둘 다 지금 미뤄둔 하나를 되짚어 끝내는 게 무서워서 나온다. 새로 갈아엎으면 미완을 버려둘 수 있고, 느끼기만 하면 아무것도 심지 않아도 된다. 오딧세우스가 아는 건 이거다. 되감는 건 후퇴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되감는 길이 집으로 가는 유일한 항로다. 지나온 좌표를 다시 읽은 자리에서만, 다음 항로가 열린다.

Odysseus and the Sirens
같은 안개 속, 세이렌과 오딧세우스
세이렌은 노래로 뱃사람을 홀려 배를 바위에 부딪히게 했다. 그 노래는 늘 이쪽이 더 낫다고, 지금 뱃머리를 돌리라고 불렀다. 오딧세우스는 귀를 막지 않았다. 그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대신 몸을 돛대에 묶었다. 홀리는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항로를 지켰다. 안개가 끼면 우리 안의 세이렌이 먼저 깨어난다. 이번엔 진짜 다를 거라고, 다 지우고 새로 시작하라고 속삭인다. 그 노래를 따라 옛 세이브를 지우면, 미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만 바꿔 다음 새 게임에 다시 뜬다. 세이렌과 오딧세우스는 같은 안개 속에 있다. 갈리는 건 그 노래를 따라 배를 돌리느냐, 다 들으면서도 항로를 지키느냐 하나다.

하늘은 화면을 껐다 켜 줄 뿐
태양과 수성이 게자리에서 정확히 겹쳐, 되감기를 바닥까지 내리는 주다. 오브 0.1도, 거의 한 점이다. 바로 다음 날 게자리 신월이 새 씨앗의 자리를 연다. 게자리라 그 되감김은 명치, 가슴께로 온다. 신월 암전의 먹먹함,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몸으로는 명치에 얹힌 무게로 온다. 다 느껴지는데 한 톨도 못 심겠는 감각이다. 하늘의 몫은 여기까지다. 화면을 껐다 다시 켜 주는 것까지가 하늘이고, 거기서 새 게임을 누를지 미뤄둔 좌표를 되읽을지는 네 손에 남는다.
그 먹먹함을 푸는 길은 화면을 다시 지우는 게 아니다. 되감는 방향을 트는 것이다. 다 갈아엎으려던 손을, 미뤄둔 좌표 하나를 되짚는 손으로 돌린다. 오딧세우스가 새 바다 대신 지나온 물길을 되짚은 것과 같다. 크게 새로 벌이는 대신, 되감겨 올라온 미완 하나를 끝내 그 자리에 씨앗을 심는다. 갈아엎으려던 힘은 그렇게 정산으로 내려앉는다.
이번 주 한 수
이번 주 포르투나 프로토콜은 오딧세우스 주파수 명상, 417Hz다. 417Hz는 되돌림의 소리다. 눈을 감고 3분, 이 소리 하나에 집중한다. 그리고 되감겨 올라온 미완 하나를 떠올린다. 여러 개가 들리면 딱 하나만 고른다. 명상이 끝나면 그 하나를 되읽어 딱 한 걸음만 끝낸다. 그 끝낸 자리가 이번 주 신월의 씨앗이다. 새 게임 버튼은 그 다음에 눌러도 된다.
노트를 다 지우고 새로 열고 싶던 그 밤으로 돌아가 보자. 새 노트를 여는 손을, 미뤄둔 페이지 하나로 되돌린다. 반쯤 하다 만 그 하나를 되짚어 마저 끝낸다. 되감아 그 하나를 다시 읽은 자리에, 항로가 열린다. 오딧세우스의 귀향은 늘 그렇게 시작됐다.
포르투나 프로토콜은 매주 하나의 신화적 페르소나로 그 주의 하늘을 읽고, 몸으로 내려 실행 한 수로 옮긴다. 점성 데이터는 방향을 가리킬 뿐, 어느 좌표를 되읽을지는 언제나 당신의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