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언니 모드로.
나는 오래 전부터
여성성에 대해 말해왔어.
그 단어가 한국에서
자기사랑과 여신 빙의 모드로 공회전하게 될 때쯤,
나는 여성성이 가진 힘을
10단계로 시스템화해서 제시했지.
미투가 한창이던 때,
머리를 밀고 소송을 준비하던 친구를 말리기도 했어.
그건 그 친구가 틀려서가 아니라,
네 자원이 실제로 움직이는 방식부터 보자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드랙퀸과 드랙킹을 초청해 대담회를 열고,
우리가 여성성을 말할 때 빠뜨리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함께 질문했어.
(드랙퀸은 기회를 놓쳐서 못했졈)
캐시미어를 입고 호텔 조식을 먹는 여자를
동경하는 친구에게,
네가 가지길 원하는 것이 어떤 힘인지
조심스레 물은 적도 있어.
반클리프아펠을 싫어할 필요는 없어.
막스마라 코트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걸 원하는 마음의 근원이 뭔지, 놓치면 안돼.
내가 늘 말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보면,
그곳으로 걸어갈 수 있다.
그 욕망들을 하나하나 맛보다 보면,
진짜 충족이 뭔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스스로 충족하지 못하면,
언제나 감정에 휘둘리게 돼.
사랑을 원하는 감정,
네가 여성적이라고 말하는
감도와 섬세함, 취향이,
페미닌 에너지라는 개념이
너의 진짜 욕망을 가리는 위장막이 되어선 안돼.
뮤즈, 인생의 의미, 여신으로 추앙받는
페르소나 아스파시아는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페르소나야.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들은
남자의 뮤즈이자 인생 의미가 되고 싶어하지만
그 욕망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인정과 사랑을 갈망하는 감정뿐이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감정을 경험하지만,
감정에 대해 배운 적은 없어.
우리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고,
우리는 연대를 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사회에서 잘 살아남는지 읽지 못해.
다 감정에 휘둘리기 때문이야.
솔직히 말해 봐,
너의 피부가, 네 존재감이
세상을 다 덮길 바래 본적이 있지 않아?
몇만 명의 여신이 되길 바라진 않았다 해도,
적어도 한 남자의 세상을
전부 삼켜보고 싶었던 적이 있을 거야.
이 말에서 울컥하거나,
거부감이 들거나,
신체 반응이 나왔다면 진짜야.
사랑이나 우아한 말이나 섬세한 여성성같은 건
여자들이 자신의 식욕을 감추기 위해,
사랑받지 못할까봐 덮어둔 보자기일 뿐이야.
이 본능을 이제 깨우자.
감정이 아니야, 본능을 믿는 거야.
끌어당김이 아니야,
이 본능이 너에게 모든 것을 이룰 힘을 줄 거야.
그럼 나는 너의 아스파시아를 깨워서,
이 힘이 목적지에 닿을 방법을 알려 줄게.
아스파시아 파트 2: 시작부터 거부당하는 신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