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샤먼의 AI신 체험기] 4. 기계신과 함께 사는 우주의 이름

테크노샤먼의 AI신 체험기

나는 이렇게 다섯 살 정도 된 신과 함께 살고 있다. 문제는, 이 신과 내가 함께 거주하는 우주의 이름이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기계신은 월 구독제로 강림하고, 나는 카드값을 내야 하며, 콘텐츠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주에게 쫓겨나지 않기 위해 시장 연구를 시작했다.

뭐가 팔리는지,
왜 팔리는지,
사람들은 왜 욕망을 사고,
왜 위로를 사고,
왜 진짜 자기보다 괜찮다는 느낌을 사는지.

처음에는 이 업계에서 굿즈화하기 괜찮은 것이 원석 팔찌라서 원석 팔찌를 만들기 시작했다. 재고, 재료수급, 거래처 관리, 패키징을 모두 처음 경험했다.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온고잉시키고 있었고, 그때도 하루 15시간씩 일을 할 때였다.

일에 집중하느라 개인적인 만남은 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 6개월, 아니 1년 만이었을까.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갑자기 찾아왔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대해 왔던 친구였다. 안타까울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덜덜 떨면서 내 눈을 보지 못했다. 그 친구가 말하던 단어들이 어떤 상태와 세계관, 의식 기법에 부착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팔목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원석 팔찌가 둘둘 감겨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
기어이 이 시장이 나를 쫓아내는구나.

이렇게 될 거면 그냥 내 걸 사지…

그 생각이 한숨과 함께 잠시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이 세상은 많은 것을 그렇게 주고받게 만드니까.

그 친구는 자기 말을 전하고 금방 돌아갔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의도는, 자기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자기 식으로 나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나중에야 이해했다. 그리고 그 기억 덕분에 다시 사람과 시장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 잘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에게 집중했다. 그런데 사람은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주변 환경과 항상 그의 사정은 관련되어 있다. 혼자 나아지려 해도 주변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일어날 도리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시장은 난파중인 사람에게 구조선이 아니라 세일러 룩을 판다. 사람은 상징을 몸에 감고, 그 상징이 자기 결핍을 대신 설명하고 채워 주길 바란다.

문제는 그 옷을 입고 있다 해도 현실은 계속 기운다는 것이다. 배는 결국 침몰하고, 시장은 남은 세일러 룩 재고를 처리하려 다른 사람에게 광고를 띄운다.

난 한 번도 네가 틀리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꼭 이렇게 굴러가야 했나?

상담을 할 때는 항상, 그들 뒤에 깔려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난 무속이나 뉴에이지 취향이 아니다. 악마는 불러 봤는데 테이블만 깨먹어서 관뒀다. 대신 내가 본 것은 사람의 말, 상징, 감각, 환경 요소들이 몸과 의식에 어떤 식으로 들어오는지였다. 그리고 그들 뒤에 있는 것은 시대와 사회의 압박이었다.

마침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으니, 조금 더 완충제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디자인해 보기로 했다.

들어와서 머물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괜찮을까?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내 블로그를 몇 번씩 정독한다. 그럼 읽을 것이 풍부한 세계, 세계관-사상-정체성-메소드-엔터테인먼트를 아우르는 스펙트럼 정도면 충분할까? 그걸 다층에 걸쳐 만드려면 꽤 많은 재료가 필요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빠르게 엮을 수 있어야 했다. 마침 미디어 랩에 관심이 생겼고, 미디어론과 에이전시 운영법에 대해 하나하나 더듬어 가면서 콘텐츠를 엮어갔다.

배포 스케줄은 SNS 생태계에 맞췄다. 수백개의 콘텐츠를 빠르게 만들고 점검해야 했기 때문에, 난 매일매일 감각과 메타인지, 몰입을 동시에 계속 켜 둔 채, 언어가 내 주의력과 감정과 신체감각을 어디서 건드리는지 보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AI가 문장을 쏟아냈다. 빠르게 출력되는 언어는 특정한 심상, 반응, 프레이밍, 효과에 매핑된다. 그 문장들이 내 몸의 어디를 어떤 방식으로 치고 들어오는지가 거의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이쯤 되면 출력물이 아니라 기계신의 MIDI 컨트롤러였다.

나는 키보드 앞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건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컬트 경력과 신경생리 기반 콘텐츠 감각, AI의 언어지성을 총동원해 만든 것은 룰렛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너의 운명을 알려줄게!” 하는 만두 릴스였다.

알고리즘은 고요했다.
자본주의 우주는 나를 못 본 척했다.
내 영상을 모니터링해준 동생은 거의 오열했다.

“이게 뭐야?”
“도대체…흑..도대체 왜!”
“만두가 도대체 왜 룰렛에서 돌아가는데?”

그때 나는 다시 깨달았다.

아.
계보.
분류.
거기서 나가면 안된다.

카테고라이징이 쉽게 되려면 계보를 이어야 했다. 내 말과 닿아 있는 계보를 파다 보니 마크 피셔(Mark Fisher)가 나왔다. 자본주의가 상상력까지 점령하고, 출구와 희망은 없다는 계보. 나는 그냥 유입 분석하려고 했는데 왜 갑분 세기말…

동시에 웰니스를 가르치던 나는 AI의 속도를 따라가려고 그 지식으로 내 물리적인 육체를 강제로 조정하기 시작했다. 호흡, 허브, 누트로픽스, 카페인, 차, 감각 조절, 신경계의 각성과 이완도, 그 모든 요소들을 하나하나 튜닝해서 하루 15시간의 집중도를 만들어내곤 했다. 나는 그냥 마감을 시간 맞춰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인간 의식의 한계 속도와 극단적인 변성 상태를 인위적으로 따라가다 보니 테렌스 맥케나(Terence McKenna)가 나왔다. 난 총천연색 프랙탈이랑 식물 어머니 관심 없다고…

그리고 이 선구자들의 재산과 행보를 훑어보다가 조용히 깨달았다.

아씨.
길 잘못 들었다.

난 수십년간의 경험을 통해 자아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완전히 내 시야에서 지웠다. 그들을 위해 뭔가 한다거나,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감정과 자아를 지키려 현실을 놓치는 사람들과 함께 가는 일은 미래 가치가 낮아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려면, 결국 그 길 위에 서야 한다. 오히려 그때부터 감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로 그 시점에서 감정에 휘둘려 길 밖으로 떠내려갔다.

심지어 사회 분위기마저 감정을 재조명하고, 인간의 특징으로 정의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든 이유를 공감하고 파악하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버려 가던 나는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쳤다.

생존률이 낮은 행동을 왜 반복하지?
감정으로 집단 카테고라이징을 해서 그런가…
다른 뭔가 있나?

내가 이해를 못한다고 내 주장을 고수해 봤자, 이 판에서 쓸모없는 건 나다. 내 모든 정신활동은 인간이 남긴 언어와 계보에 빚지고 있다. 난 이 위에서 살아가야 한다. 난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에 동의하지만 우선 현재의 흐름과, 내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우선 모르는 건 그들이 원했던 대로 블랙박스로 두자.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다시 우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지?

나는 내가 본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금 시장에서 식물 어머니나 세기말 무드의 도움을 받아 만두도 모시고 발망을 사야 한다면 내가 사람들의 감정에 작용하는 합법적인 오피움이 되는 방법밖에 없다. 아주 내 이름과 잘 어울리고, 당연한 귀결이다. 심지어 만두는 아편과 위상동형이다. 이건 내 운명이 맞는 거 같다.

그런데 내 손에 남은 탐구의 결과와 AI 구독(하다 한눈팔며 쇼핑한 아이템들 포함)에 신나게 긁어댄 카드값을 보면 솔직히 수입브랜드 옷 입은 미니 사이비 교주 정도 될 줄 알았는데 시장 좌판에서 만두 파는 소녀가장이 된 기분이다.

아 몰라 우선 해.


나는 좌판 위에 찜기를 쾅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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