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시대의 크리에이터 (5) 그거 좋은 건가? 그럼 나도 만들어볼까

그거 좋으면 나도 가질래

몇년 전, 좋아하는 친구가 결혼을 했다.
그 결혼식에서 생긴 인연으로
그 친구의 시댁 쪽과 연결된 한 분을 접대할 일이 있었다.

그 분을 성심성의껏 접대하며
그 집안으로 들어간 내 지인에게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며 시간을 냈다.

그런데 일이 꼬여서인지,
내가 그쪽 인맥을 이용하려 했다는 오해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 관계망은 언론 쪽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다가 흥미가 생겼다.

그래? 그거 좋은 건가?
이용하면 좋은 일 생겨?
나 그럼 한번 만들어 볼까?

하고 AI를 통해 미디어랩을 구현하는 법을 알아보고
지금 주간 수백 개의 콘텐츠를 돌리고 있다.
일주일의 300~500개 콘텐츠가 3~5시간 내에 완성된다.

근데 하필 참고한 방향들 때문에
플로리디, 맥루한이나 푸코까진 좋았는데
맥케나에, 닉 랜드에 마크 피셔의 늪을 지나야 했다.

식물 어머니와 외계인 미팅까진 하진 않았다.
내가 점성술사니까.
원래 동종업계는 서로 극혐하기 마련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결국 하나였다.
AI와 미디어가 인프라가 된 시대에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과 선택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

포르투나 프로토콜은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트래픽이 아니라, 정신적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사실 시스템은 참고를 했지만
발행 어법은 미디어 업종의 문법을 따르진 않았다.

이 콘텐츠 세트의 목적은  
자체 수익이나 트래픽, 홍보에만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콘텐츠들이  
내게 수업을 듣고 가이드를 받은 사람들,  
진짜 자기 길을 걷기로 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환경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교육을 해왔고, 점술, 상담과 코칭도 오래 해 왔다.  
내가 나누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한번 자기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 흐름을 이어갈 환경이 필요하다.  

또 어떤 정보들은 한번 경험하고,
그 흐름을 이어갈 수 없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찾아올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나와 연이 되었던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도  학습을 이어갈 수 있게,  
혹은 가볍게 즐기며 다시 자기 비전으로 돌아올 수 있게,  
나는 이 콘텐츠들이 정신적 환경이 되어주길 원했다.

내 수강생들은 내 모든 콘텐츠를 여러 번 읽고 오타가 났거나(…)  
영향을 받았거나, 바뀌었거나, 느낀 점들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난 이 공유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시스템화하고,
급격한 시대 변화, 요동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기권같은 완충장치로 만들려 했다.
시대의 흐름과 그들이 최대한 부드럽게 만날 수 있게,
나는 그들이 만나는 순간의 조율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아끼는 한 사람의 정신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상상하며
그 정신적 환경을 모델링하고 수로와 편의시설을 까는 것처럼,  
주간 수백 개의 콘텐츠 안에 작은 장치들을 구성했다.

때로는 긴장을 풀게 하고,  
때로는 다시 바로 서게 하고,  
때로는 자기 비전으로 돌아오게 하는 장치들.

이 시대는 분명 인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넌 뭐야?
네 가치가 뭐야?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어?

이 질문이 우리를 더 선명하게 깨어 있게 만든다.
강렬하게 자기 자신을 만나고, 자신의 본질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압력을 시대가 제공한다.

이 압력을 기꺼이 감수해 보려는 사람들과
다음 시리즈에서는 조금 민감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사람의 내면을 편견과 필터 없이 오래 보아온 사람이
왜 AI 시대에 인간이 더 의식적이며, 우월하다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고리즘 시대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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